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카다 유키코 투신자살 사건 (문단 편집) === 사건 직전의 상황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637eONouG38)]}}} || ||<#8ABCDC> '''{{{#FFFFFF 1986년([[쇼와 시대|{{{#fff 쇼와}}}]] 61년) 4월 4일에 출연한 'スターどっきりインタビュー(스타 깜짝 인터뷰)'[* 방송은 사건 이후에 방영되어 "이 방송은 4월 4일(금)에 녹화한 것입니다."라는 자막이 두차례 송출되었다.]}}}''' || ||||{{{#!wiki style="margin:10px" 어린이: 오카다 유키코씨에게 질문합니다! 몸은 말라서 작은데 어째서 가슴은 그렇게 크신 건가요? 유키코: 아, 아뇨...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는데 전혀 마르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렇게 크지 않아요. 야쿠마루 히로히데: 커. 유키코: 그렇지 않아요. [[하야미 유]]: 그래도 괜찮죠. 유키코: 평범해요, 진짜로. 사회자: 자신을 가지는 게 좋아. 출연자: 맞아 맞아, 자신 있는 편이 좋지. 사회자: 얼마?(=몇 사이즈) 유키코: 에? 보통이에요. (손을 둥그렇게 말면서) 두 개.}}} ---- {{{#!wiki style="margin:4px" {{{-2 スターどっきりインタビュー(스타 깜짝 인터뷰) 인터뷰 中 }}}}}} || [[오카다 유키코]]는 사망 나흘 전인 1986년 4월 4일 소속사 선배인 [[하야미 유]], 남성 아이돌 시부가키대와 함께 'スターどっきりインタビュー(스타 깜짝 인터뷰)'라는 일반 어린이들이 스타들에게 질문을 하는 버라이어티 방송에 출연했다. 당시 활동하던 노래 [[입술 Network]]를 부르는데 눈에 힘이 없고 다크 서클이 보이며 마지막 부분에 유키코의 사망을 추모하는 자막이 송출되었다.[* 삼가 故 오카다 유키코 님의 명복을 빕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8OymLhUYAMQBl0.jpg|width=100%]]}}} || || '''{{{#fff 1986년([[쇼와 시대|쇼와]] 61년) 4월 5일에 [[사카이 노리코]]에게 선물로 준 사인 포스터.}}}''' || 유키코는 4월 12일에 열릴 단독 콘서트를 위해 매일 [[선 뮤직 프로덕션]]에서 새벽 3시까지 열심히 연습하고 있었다.[* 생전 당시 인터뷰에서는 "팬들과 같이 즐겁게 공연을 즐기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라서 힘들지 않다."고는 했지만 역시 성장기에 새벽 3시까지 연습을 굴리는 소속사 관계자들이 봐도 유키코는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https://youtu.be/xLow5hRgMcE|#]] 사망 사흘 전인 4월 5일 인기가도를 달리던 유키코는 소속사의 동료 아이돌들과 합숙하던 사장 아이자와 히데요시(相澤 秀禎)의 자택을 떠나 [[미나토구(도쿄)|미나토구]] 미나미 아오야마에 있는 맨션으로 자취를 시작하기 위해 사장의 자택에서 이삿짐 등을 정리하고 있었다. 3일 후 사망 당일엔 유키코가 살던 방에는 곧 데뷔를 앞둔 [[사카이 노리코]][* 통칭 노리삐. 유키코와 같은 소속사인 [[선 뮤직 프로덕션]]의 소속으로 유키코의 직속 후배 아이돌이다.]가 들어올 예정이었다. 이 날 아이자와 사장은 오카다 유키코와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유키코가 ''저는 이제 틀렸을지도 모르겠어요. 신인들이 잔뜩 나와서...''라는 말을 했고 이에 아이자와 사장은 ''무슨 소리냐. 너는 우리 회사의 기둥이니 힘을 내!''라고 격려하였는데 이에 유키코는 ''위에 있잖아요... 또 한 명(사카이 노리코)이...''라고 말했다. 그때의 사카이 노리코는 예명도 아직 없었던 무명의 여중생이었지만 이 날 짐을 정리하면서 나온 본인의 포스터를 후배인 사카이 노리코에게 사인을 적어 선물로 주었다.[* 이후 그 포스터는 사장인 아이자와 히데요시가 간직하고 있었다.] 사망 이틀 전인 4월 6일에는 고향 [[나고야시|나고야]]에 돌아가 콘서트를 열었고 콘서트장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본가에 들러 가족들과 오랜만에 재회하였다. 본가에서 가족과 모여 식사를 하고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언니의 성인식 사진을 보았는데 유키코는 묘하게도 아버지와 어머니, 언니가 함께 찍은 사진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았다고 한다. 평소의 유키코였다면 "왜 나만 없는 거야? 힝!"이라며 가볍게 장난 섞인 짜증을 내고 자신의 무대 비디오를 보면서 그것에 대해 웃으면서 이야기했겠지만 그날따라 이상하게도 사진을 보며 장난 섞인 짜증도 내지 않고 자신의 무대 비디오도 보지 않으며 아무 미소도 짓지 않아서 왠지 모를 낯섦이 느껴졌다고 유키코 사후에 어머니가 이야기했다.[*출처 오카다 유키코 사후 책 <사랑을 주세요>] 당일 저녁 오후 8시 53분 부모의 차를 타고 [[나고야역]]에 도착해 [[도쿄역]]으로 향하는 [[신칸센]]에 올랐는데 그것이 어머니가 본 딸 '사토 카요'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이때 유키코는 부모에게 "아빠나 엄마가 혼자 도쿄로 오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제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괜찮지만 역시 아빠나 엄마가 도쿄로 오시는 게 돈을 더 받을 수 있는 것 같아요."라는 묘한 이야기를 꺼냈다고 한다. 당시 유키코는 데뷔 3년째에 이미 수익 30억 엔을 올리는 톱 아이돌이었는데[* 수입의 액수는 사후 국회에서 열린 회의에서 다루었다.] 고향에 살던 부모더러 도쿄로 오라고 말한 데는 무언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당일 심야 [[도쿄]]로 돌아간 유키코는 매주 진행하던 라디오 방송의 마지막 화 녹음을 마쳤는데 이것이 공식적으로는 마지막 방송 스케줄이었다. 이 방송에서는 향후 스케줄 보고 같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syu9LLpa7g8)]}}} || ||<#8ABCDC> '''{{{#FFFFFF 1986년([[쇼와 시대|쇼와]] 61년) 4월 6일에 녹음한 레귤러 라디오 방송 '夜遊びしナイト!'의 마지막 방송.[* 1986년 5월 14일 발매 예정이었다가 무산되어 13년 뒤인 1999년([[헤이세이 시대|헤이세이]] 11년) 3월 17일에야 [[오카다 유키코/베스트 앨범|메모리얼 박스]]에 수록되어 발매된 [[꽃의 이미지]]라는 곡도 2분 55초부터 나온다.]}}}''' || 사망 하루 전날인 4월 7일은 오후 [[시부야]] 판테온에서 열린 '[[록키 4]]' 시사회 참석 이외에는 빽빽히 들어찬 스케줄이 없는 드문 날이었다. 이 스케줄이 끝나자마자 자택으로 돌아온 유키코는 가스 자살을 시도하기에 앞서 연습 비슷한 행동을 하였는데 가스 냄새가 유출되어 맨션에서 잠시 소란이 있었지만 금방 잠잠해졌다. 오후 10시에 미조구치 매니저가 유키코에게 전화를 걸어 내일(8일) 예정되었던 새 드라마의 촬영이 하루 연기되었다고 알리자 유키코는 "어머, 아쉽네?"라고 말했으나 목소리는 이상하리만치 밝았다고 한다. 이후 아이돌 동료였던 [[이시노 마코]]가 오후 11시 반에 유키코의 자택으로 전화를 걸었으나 4번 정도 울려도 전화를 받지 않아 끊었다고 진술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